지리산 둘레보고

시골길을 걸을 때면 간혹 만나는 사람들 속에서 어린 시절 나를 보듬어 주시던 할머니의 모습을 발견한다.
흙먼지 날리는 시골길과 감나무에 매달린 감.
그리고 옹기종기 모여있는 산촌의 집들은 추억 속의 그리움을 떠오르게 한다.

“예쁘게 생긴 처자네” 선 굵은 미소와 함께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건네시던 할머니는 잠깐 머뭇거리는 사이에 어디서부터 걸으셨는지 모를 길을 걸어가셨다.
아름다운 들녘 길을 걸어가시는 그 모습에 왠지 모를 뭉클함이 전해진다.

연파마을에 들어서니 사람보다 먼저 맞아주는 것은 마을 공터의 느티나무이다.
이 나무 아래에서 논일을 하던 농부도, 마실 나온 아주머니들도, 허리 한 번 펴보자며 나온 할머니들도 소소한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웠을 것이다.

길을 걸을 때면 이 길이 품고 있는 사연이 궁금할 때가 있다.
얼마나 많은 농부가 이 길을 걸으며 대풍의 기대를 품었을 것이며, 얼마나 많은 엄마들이 아이들이 사달라고 졸라대는 것을 사 들고 기쁜 마음에 길을 걸었을까?

산들거리는 바람이 갈대를 흔들며 날아와 내 머리카락을 가지고 장난을 치고, 걸음을 걸으면서 바라본 강물은 서두를 필요 없다는 듯 유유히 흘러갔다.
시간의 속도가 느려지는 느낌. 그 속에서 꿈결처럼 걸어간다.

바쁘게 걸을 필요가 없었다. 이 길의 끝이 목적이 아니라 이 길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이었다.
느끼고 생각했던 것을 충분히 기억에 남겨두고 싶었다. 발이 느끼고, 머리가 느꼈던 것을 잠시나마 기록해 둔다.

산들거리는 바람이 갈대를 흔들며 날아와 내 머리카락을 가지고 장난을 치고, 걸음을 걸으면서 바라본 강물은 서두를 필요 없다는 듯 유유히 흘러갔다. 시간의 속도가 느려지는 느낌.
그 속에서 꿈결처럼 걸어간다.

투박한 시골길을 걸어가 대문을 열면 언제나 버선발로 뛰어나오며 반갑게 맞아주시던 할아버지, 할머니.
솟구치는 그리움 때문인지 투박하게 놓여진 항아리들을 보면서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 마음을 평생 간직하고 싶다.

여정 중에 만난 운조루는 어릴 적 아버지의 손을 잡고 제사에 참석했던 큰집을 생각나게 한다.
일년에 한번 있는 제사준비에 바쁘면서도 어린 내 손에 약과를 쥐어주던 큰 어머니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금새라도 부엌에서 나오실 것 같다.

투박한 시골길을 걸어가 대문을 열면 언제나 버선발로 뛰어나오며 반갑게 맞아주시던 할아버지, 할머니.
솟구치는 그리움 때문인지 투박하게 놓여진 항아리들을 보면서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 마음을 평생 간직하고 싶다.

어른들이 대청마루에서 제사를 준비할 때면 아이들은 마당에 모여 놀이를 했었다.
가장 작았던 내가 놀이에 져서 울 때면 작은 아버지가 먼저 와서 큰 아이들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고가의 마당은 아이들의 추억이 있는 공간이다.

곡전재의 모습은 멀리서도 눈길을 사로 잡았다.
정돈된 문과 지나치게 치솟지 않은 처마가 선비의 풍모를 생각나게 하는 곡전재는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멋스러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곡전재의 아름다운 고가를 보면서 또다시 오랜 세월 잊고 지냈던 나를 사랑해 주었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 새롭게 피어난다.
추억이 봇물처럼 솟아나는 길 위에서 어느새 마음은 그리움의 온기로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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