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둘레보고

때로는 눈을 감아야 보이는 것이 있다.
지리산을 감싸고 있던 수많은 야생화와 스치는 바람에 마음을 들뜨게 했던 향기의 추억.
때로는 눈을 감아야 보이는 아름다움, 진정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노랑 꽃의 물결 속에서 마음은 바람과 같이 가벼워진다.
향기에도 색이 있다면 노란색의 향기는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향기일 것 같다.
노랑의 바람이 마음을 다독이는 언덕에서 향기에 취해본다.

바람의 힘을 이용한 풍차는 먼 이국의 정서를 느끼게 한다.
어느덧 마음은 유럽의 작은 마을로 떠난 듯 하고, 시선을 들어 하늘과 꽃과 사람을 바라본다.

꽃의 물결 속에 몸을 맡기면서 마음과 몸이 가벼워진다.
그 짙은 향기에 좀더 나를 맡기고 싶어 고개를 숙이지만 이미 언덕에 오를 때부터 꽃의 향취에 취해 있었다.

생명이 다한 후에도 아름다운 것이 있다.
비록 대지에 뿌리를 두고 싱싱한 생명을 자랑하던 모습은 아니지만 생생했던 생명의 기운은 여전히 남아있다.

수많은 아름다움이 시선을 이끈다.
뿌리부터 줄기까지, 그리고 꽃까지 이용할 수 있다는 수많은 허브 식물들은 갖가지 모양의 아름다움으로 자태를 뿜어내고 있다.

아름다운 것이란 무엇일까?
눈으로 느끼는 것만이 아닌 온 몸으로 느끼는 것, 시선을 유혹하는 것을 넘어 마음을 흔드는 것.
아름다움은 마음을 통해 전해지는 강렬한 감각이다.

보기에도 앙증맞은 작은 꽃방울이 수줍게 피어있는 공간은 아이들이 꿈꾸는 동화의 세계를 보는 것 같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꿈을 하나씩 접어가는 과정.
잠시나마 어린 시절에 꾸었던 꿈을 다시 생각한다.

허브밸리에는 한없이 단단해 보이는 바위와 한없이 부드러운 물이 함께 존재한다.
단단함과 부드러움이 어우러진 이곳에서 수려한 꽃들이 피어나는 원리는 사람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부드러움과 굳건함이 공존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한잔의 차를 만드는 정성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일년의 농사를 지어서 잎을 가꾸는 정성은 별도로 하더라도 적당한 온도의 깨끗한 물에 다듬어진 차를 우리는 손길이 조심스럽다.
차를 마시는 것은 정성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한잔의 차를 마시고 향기에 취해 꽃밭을 거닐 때 눈은 저절로 감겼다.
눈으로 보이는 풍경보다 더 넓고 향기로운 세계가 눈앞에 펼쳐지는 느낌.
허브밸리는 보이는 것보다 넓은 세상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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