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둘레보고

가족의 시작은 작은 동굴, 작은 천막에서부터였다.
거대한 빌딩과 아파트가 주된 생활터전이 되었지만, 여전히 사람들에게는 작은 천막에 누워 함께 하늘을 바라보던 그리움이 남아있다.

마음은 벌써부터 설레고,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까지 싱그럽다.
도심을 벗어나 자연을 찾는 마음을 넉넉하게 받아주는 산은 그 입구부터 싱싱한 푸른 기운으로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한다.

오늘 하루는 내 내면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그리고 온전하게 낮과 밤을 대자연과 보내리라.
발끝을 스치는 물결이나 울퉁불퉁한 등산로까지도 편안하게 나를 만져주는 것 같다.

원시림의 숲 속에 사람의 손길이 닿아 다리가 놓였다.
다행히 그 어울림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기운을 해치지 않고 다소곳이 자리잡았다.
자연을 차지하지 않고 어울리고자 하는 마음이 아름답게 느껴져 기분 좋게 셔터를 누른다.

무주, 진안, 장수를 "무진장"이라 하여 "오지"라고 불렀고 그 속에 가족휴양촌이 있으니,
자연의 깊이를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 그 깊은 오지 속에 그림 같이 캠핑장이 자리 잡았다.
떨어지는 폭포는 물줄기가 아닌 소리로 마음을 씻어준다.

숲이 사람을 치유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
일부러 혹은 우연이라도 자연의 기운을 잘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은 눈으로 , 코로, 손으로, 온 몸으로 자연의 기를 받고 몸을 바로 세우고자 했을 것이다.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을 나만의 편지를 쓰고, 붉은 나뭇잎 한 장으로 책갈피를 대신한다.
쓰던 글을 멈추고 누워서 나뭇가지 사이로 푸른 하늘과 구름을 본다.
마음으로 하늘에 글을 쓰며 진정한 휴식을 느낀다.

마음껏 뻗어보는 기지개 사이로 싱그러운 바람이 슬며시 들어와 가슴을 채운다.
팔이 길어지고,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
여유 있게 쉬었다 가라는 통나무집의 유혹을 떨치고 숲으로 발길을 옮긴다.

진한 쪽빛의 물은 멀리서 볼 때는 시원하게 느껴지더니, 가까이 갈수록 소담한 것이 정겹게 느껴진다.
졸졸 거리며 흘러내리는 깨끗한 물이 손과 발을 깨끗이 한다면 하늘을 향해 시원한 가지를 뻗은 나무는 눈과 마음을 깨끗이 한다.

어느덧 해가 산꼭대기에 걸리는 시간. 나뭇잎이 바삭거리는 전망대에 올라서 석양을 기다린다.
산속의 하루는 일찍 끝난다고 하지만 아쉽지는 않다.
산 정상을 넘나드는 붉은 해의 기운과 밤이면 더욱 깊어질 산의 기운을 느낄 욕심이 생긴다.

수려한 풍경 속에 묻혀서 대자연의 넉넉한 마음을 느끼고, 나무 끝에 걸린 별을 보며,
불을 소중히 생각했던 태초의 인간들을 생각했다.
그들은 저 하늘의 별들도 자기들처럼 가족이 둘러앉아 피워놓은 화톳불이라 생각했으리라.

생각이 가족에게 미치자 수신인 없던 편지에 가족의 이름을 붙여 다시 쓰게 된다.
푸른 하늘에는 푸른 섬광의 별이 떠있고, 내면의 나를 만나고 내를 넘어 가족을 생각한다.
과거와 미래의 시간이 공존하는 그 곳. 방화동 가족휴양촌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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