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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아름마을

흙과 그릇과 사람
하늘 빛을 닮고 싶었다.
그저 파란 하늘 보다 비밀을 담은 듯 신비로우며 부드럽게 세상을 감쌀 듯한 잿빛의 흐린 하늘처럼
나만의 분위기를 가지고 싶었다.
하늘의 빛을 바라는 사람들이 흙을 만지고, 불을 지펴서 그릇을 구워 내며,
그 결과에 미소를, 때로는 낙담을 하고, 또다시 흙을 만지는 그 곳.
사기아름마을이 그림처럼 서있었다.
나무문의 삐걱거림이 유난히 크게 들렸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목소리로 주인을 찾는데 주인은 보이지 않는다.
열려진 문은 닫힌 문에 익숙했던 나를 당황시킨다.
사람이 사는 곳에는 항상 경계가 있다.
안과 밖의 경계, 우리와 그들의 경계, 나와 너의 경계.
문고리는 그런 경계를 열어주는 작은 마음과 같다.
소박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풀어주는 주인의 미소가 반갑다.
그릇 만드는 것 보러 왔냐는 수수한 말에 어색한 미소로 답을 하고 말았다.
흔하게 맡을 수 있던 흙 냄새가 여기서는 다르게 느껴지고, 향긋하다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똑같은 물건이라도 무엇에 쓰이고, 어디에 있냐에 따라 향기마저 변하는 걸까.
소매를 걷고 물에 젖은 흙덩이를 치대더니 물레에 올려 쓱쓱 손으로 빚어낸다.
손은 바쁘게 움직이지도, 움직이지 않는 것도 아니다. 작지만 힘이 담긴 손놀림이 필요한 순간…
흙이 물을 만나 부드러워지고, 장인의 손을 만나 모양을 만들어 간다.
그러고 보니 내 마음도 흙과 같았다.
따뜻한 말 한마디에 부드러워지고, 다른 이의 마음과 만나 모양이 만들어졌다.
오랜 세월동안 장인이 이룩한 것은 강함이 아닌 부드러움과 멈춤이었다.
강해지기 위해서 끊임 없이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부드러움과 정적인 것이 주는 위대함을
깨닫게 하는 손길.
배움을 얻는 다는 것은 인생의 큰 기쁨이다.
수 없이 흙을 다지고, 부드러운 손길로 쓰다듬은 그 세월을 짧은 시간에 알고자 하는 것 자체가 욕심이지만,
장인의 마음 한 조각이라도 느껴보고 싶었다.
초심자의 욕심 섞인 손길이 안타까웠을까? 천천히 다가 온 익숙한 손은 흔들리던 흙을 정리하고, 불안하던
마음을 다독여 준다. 불안한 마음과 흔들리던 손이 신기하게도 가라앉는다.
흔하고 흔한 것이 사람의 발에 밟히는 흙이지만, 그릇이라는 새로운 존재로 바뀌기 위해 정결한 마음으로
유약에 몸을 담근다.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한 군데도 마음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이제 그릇을 만들기 위한 첫 단계가 지났는데 힘든 미소가 얼굴에 떠올랐다.
천천히 하라는 말을 나지막이 건네는 장인의 포근한 말 속에서 조급함을 경계하는 마음을 얻는다.
가지런히 줄을 지어 이제 시작될 새로운 불의 관문을 기다리는 그릇들을 보며 마음이 설렌다.
이제 시작될 그들만의 축제 앞에서 이미 다른 잡념은 사라졌다.
어머니는 아궁이 앞에서 딸과 이야기를 나눌 때, 마음 속에 있던 말을 쉽게 꺼내시곤 했다.
어머니의 아궁이와 그릇을 굽는 가마가 같은 점은 무언가를 향한 정성, 그리고 마음을 열어주는 뜨거움이다.
섣부르게 건드리면 확하고 뜨거운 열기를 내 뿜고는 쉽게 사그라진다.
무관심하게 방치하면 힘을 채 뻗지도 못하고 사라진다.
불을 피운다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과 같은 모양이다.
이 아름다운 그릇에 무엇을 담고 싶은가.
향긋한 차 한잔이 제격이라지만, 술이나 물을 담는다고 그릇이 마다할까?
무엇을 담는가 보다 누구와 나누고 싶은지를 먼저 떠올린다.
넉넉한 공간을 가진 그릇은 모양도 그저 그렇다. 그런데 눈을 떼지 못했다.
화려하지도 않고 신비롭지도 않은 소박한 아름다움은 눈을 현란하게 했었던 다른 아름다움에 대한 기억들을
하찮게 만든다.
쨍! 마음이 깨져 나간다. 아깝다. 나만이라도 지켜주고 싶었다.
하지만 장인의 망치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다.
매정해 보이는 손이지만 그 속에 깨지는 거에 대한 아픔이 진정 없었을까.
수 많은 손길과 마음을 주었건만, 원하지 않은 결과가 나온 이유는 하늘이 허락하지 않아서겠지.
눈물을 참고 아쉬움을 접으며, 포기해야 하는 마음을 배워야 한다.
가지런히 접혀 있는 그릇들의 안에 소박한 잿빛하늘이 담겨 있다.
비어있는 그릇이지만 그 속에는 장인의 마음과 정성이 가득 차 있다.
그리고 이제 그 속에 사람들의 행복이 담겨질 것이다.
이 흙이다.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듯 하지만, 그 속에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
나도 내 안의 변화의 가능성을 찾아내고 싶다. 쓰다듬고 공을 들여 세상에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
때로는 맹렬한 움직임으로, 때로는 멈춤의 동작으로 그리고 화려한 열정의 불꽃으로 숨어있는 가치를
찾아내는 그곳.
지금도 그곳에서는 조용한 열정이 맥동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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