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둘레보고

여행의 의미를 찾기 위해 미리 공부를 하던 것이 습관이었다.
동강에 얽힌 단군과 동학군, 빨치산의 역사가 마음을 무겁게 하였건만 뜻밖에 만나는 것을 그들의 한을 넘어서는 허허로운 웃음소리였다.

길을 나선지 얼마 되지 도 않아서 작은 쉼터가 내 마음을 붙잡는다.
어여쁘게 자라난 소나무 한 그루가 시선을 빼앗고, 예쁘게 앉혀진 작은 벤치는 바쁜 걸음을 잠시 멈추라고 내 발목을 붙잡는다.

마을 입구에 세워진 나무와 쉼터는 오랜 길을 걸어 마을에 도착한 나그네들이 길에서 붙은 악귀를 떨쳐내듯 먼지를 털고, 피곤함으로 굳어버린 얼굴을 푸는 곳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위해 설램의 공간이 바로 마을 입구이다.

어릴 적 옻나무는 나에게 심한 가려움증을 선물하였었다.
그런데 의중마을에서는 옻나무가 황금보다 귀하다고 입을 모은다.
식용을 넘어 약으로도 쓰이는 옻을 다루는 마을에서 얄팍한 경험으로 인한 선입견이 부끄럽게 느껴진다.

오래된 나무가 그 동안의 한을 품고만 있다면 내면의 불꽃 때문에 생명을 지속하지 못할 것이다.
인고의 세월은 나무를 마르고 지치게 하였지만 새로운 잎은 싱싱한 생명력을 불어넣어준다.

두리번거리며 걷는 것은 내 오랜 습관, 무얼 그리 찾느냐는 놀림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어릴 적 선생님은 같은 걸음에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좋은 습관이라 칭찬해주셨었다.
길에서 만난 바위의 듬직함에 빠져서 그 마음을 적어 놓는다.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흔한 광경이라 생각했는데,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산의 기운이 내려와 사람을 만나고, 사람의 흔적은 강과 함께 유유히 흐른다.
이런 풍경을 과연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그저 아름답다는 생각만 든다.

소담하게 쌓아 올린 둑이 높은 논두렁.
논두렁 옆에서 수많은 세월 동안 농부와 선비들이 농을 건네며 만났을 고목.
이 길에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숨어있다.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흔한 광경이라 생각했는데,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산의 기운이 내려와 사람을 만나고, 사람의 흔적은 강과 함께 유유히 흐른다.
이런 풍경을 과연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그저 아름답다는 생각만 든다.

변강쇠와 옹녀가 마지막 자리를 잡은 곳이 지리산 자락이라 하였는데 그들도 들판의 꽃을 보며 즐거워했을까? 불현듯 떠오른 희대의 연인들이 부끄러운 미소를 짓게 하지만 그들이 가진 한스러움은 또다시 산천으로 눈을 돌리게 한다.

점차 붉어지는 햇빛을 받으니 산천이 더욱 뚜렷한 모습을 드러낸다.
세로로 길게 뻗은 그림자들은 이 땅에 묻혔던 사람들의 이야기만큼 서글프다.
하지만 유유히 흐르는 강물과 포근하게 자리잡은 마을은 그 마음을 포근히 위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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