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둘레보고

생명의 흔적이며, 생명의 기원인 물.
구불구불하게 아래로 향하지만 항상 올바른 길을 찾아가는 물의 마음을 생각하며 소담한 길을 걸어 물의 기원을 찾아간다.

너무 가까운 것들은 귀하게 대접받지 못하는 걸까.
비록 그것이 나를 존재하게 해주는 소중한 것일지라도 항상 곁에 있기에 그 가치를 모를 때가 있다.
‘물을 전시할 게 있을까?’ 라는 오만한 마음을 아는지 잔잔한 물이 그윽한 시선으로 여행객을 맞는다.

태조 이성계가 봉황을 만나며 개국의 꿈을 꾸었다는 뜬봉샘은 국가의 근원을 이야기해준다.
하지만 물이 말해준 것이 단지 조선의 개국이었을 뿐일까?
이미 물은 그 이전부터 전 국토를 보듬으며 백성의 삶을 보듬어주는 존재였다.

소박한 백성들은 땅을 일구고 물을 끌어들여 과일을 가꾸며 민초의 삶을 챙겨왔다.
국가를 이끄는 지도자는 봉황과 같은 이상을 꿈꾸지만,
가족을 생각하는 백성들은 작은 열매에도 고개를 숙여 감사하는 삶을 살아왔다.

깊은 바닷속의 신비로운 세계부터, 마을 우물가에서 뛰어 놀다가 머리부터 뒤집어 쓰던
시원한 물까지 물은 인간의 역사에서 가장 신비로운 영역이며, 가장 친근한 존재이다.
물의 역사는 우리네 삶의 모습이다.

무엇을 위한 여행인지도 잠시 잊게 만드는 향긋한 유혹.
상큼한 붉은 빛과, 이브를 유혹했을 달콤한 향기에 취해 잠시 갈 길을 잊었다.
그리고 시원하고 달콤한 사과를 함께 나누던 사람들에 대한 추억이 나를 미소 짓게 한다.

기분이 맑아지는 느낌.
촉촉함 속에 피어나는 신록의 느낌과 나 좀 봐달라며 말하는 꽃의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자연의 숨결이 온전하게 퍼지는 이 길은 신비로운 비밀을 간직하고 있기에 더욱 기분 좋은 설레임이 느껴진다.

풋풋한 들국화가 수줍게 얼굴을 내밀고, 이리저리 구르고, 깎이면서 자신의 모양을 만들어간 돌들도 손길을 내민다.
아름다운 생명을 꽃피우고, 시련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도록 도와주는 것.
물의 여정이 더욱 신비롭게 느껴진다.

때로는 한 방울의 물이 아쉬워 하늘을 향해 야속한 시선을 보내기도 하고,
홍수의 물줄기에 눈물을 흘릴 때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삶 속에서 물은 친근한 존재.
쿵덕쿵 소리가 들리는 물레방아가 곡식을 빻는 사람들의 웃음소리처럼 들린다.

잊고 지낸 소중한 것들에 대한 생각에 빠진 사이에 뜬봉샘이 눈앞에 다가왔다.
이 작은 샘이 위대한 역사가 시작되고, 사람들의 삶을 이끌어주는 신비로운 힘을 가진 곳이다.
이 곳에서 바라보는 물은 생명 그 자체로 다가온다.

뜬봉샘은 작지만 그 어떤 호수보다 넓고, 어떤 우물보다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시작의 의미는 어떤 과정이나 결과보다 크기 때문이다.
작은 물방울이 떨어져 커다란 궤적을 만든다.

뜬봉샘의 기억을 적고자 하는데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도도하게 산야를 흐르는 강물이었다.
비록 내 삶의 궤적이 구부러지고 느리게 흐르더라도 뜬봉샘과 같은 출발의 마음을 잊지 않으리라.
그리고 도도한 삶의 흐름을 이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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