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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송사와 서암정사

바위와 나무가 어울려 노는 꿈
길을 걸을 때면 언제나 그 끝이 궁금하다.
어차피 목적지를 향해 걸으면서도 그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은 마음이 든다.
벽송사와 서암정사가 보여주는 그 너머의 세계가 궁금하다.
도시에서 살면서 낯선 이에게 말을 건네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인데 산사에서의 만남은 그다지 낯설지 않다.
그저 스스럼 없이 걸터앉아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벽송사의 웅장함에 함께
작아진 사람들이 쉽게 마음을 열기 때문일 것이다.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되뇐 것은 앞으로 나아가자는 것, 좀 더 높이 올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전진의 삶이 남겨준 것은 무기력한 나 자신… ‘힘을 내. 여기까지야’
적어도 서암정사가 이끄는 길은 위로와 휴식을 줄 것 같다.
벽송사를 찾기 전부터 마음은 소나무 두 그루에 있었다.
도인송과 미인송의 전설의 실체를 보고 싶었다. 하늘위로 뻗은 고고한 자태를 보고
나 자신의 모습을 그런 웅장함에 투영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고고함을 배우리라 마음 먹었건만, 발길은 안쓰럽게 기울어진 미인송에서 멈춘다.
도인을 사모해 나무로 화했다는 미인송은 차마 구부러지지 않으려고 버티다 눈물을 떨구려고
고개를 숙이는 여인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슬그머니 눈물이 차오른다.
굳건한 모습으로 하늘을 향해 뻗고, 넓은 가지를 펼쳐서 사람들을 내려다본다.
도인의 고고한 기상을 보고자 했는데 뻗어나간 기둥이 아니라 넓게 퍼진 가지가 더 눈에 들어온다.
높기만 한들 무엇 할까. 지상을 덮는 넉넉한 마음이 없다면…
정말로 도인이 나무가 되어 그 기개를 펼쳤는지 모르겠지만,
그 모습만은 도포자락 추스르며 뒷짐지고 서있는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허리 한번 구부리지 않을 것 같지만 왠지 앞모습은 흐뭇한 미소를 담고 있을 것 같다.
화려하고 웅장함을 자랑했을 벽송사의 옛터에는 이제는 쓸쓸한 빈터만이 남았다.
전쟁의 참화는 천년 고찰에 담긴 수많은 사람들의 기원과 정진의 마음까지 할퀴었다.
마음처럼 시선도 갈 곳을 잃어 저려오는 가슴으로 하늘을 바라본다.
과거에는 사찰의 중앙에서 사람들을 보듬어주던 석탑이 나만은 이곳을 지켜야 한다는 회색 의지를 보여준다.
영겁의 세월 속에서도 하나의 증표가 되어주겠다는 굳건함을 바라보며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던
내 자신이 점점 작아진다.
때로는 돌이 따뜻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포근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위로하는 사리탑 이지만 쉽게 손을 뻗지 못하는 기품이 있다.
사람이라면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
한때는 사찰을 굳건히 받치고 있었을 텐데 지금은 허망하게 속살을 드러내고 있는 돌 받침.
그 모습이 안쓰러워 손을 대어 보는데 느껴지는 것은 놀라울 정도의 중량감.
내면의 의미와 무게를 모르고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는 경고를 되새겨본다.
새로운 벽송사를 수많은 세월 동안 벽송사를 지켜온 소나무가 바라보고 있다.
옛터를 지켜온 소나무가 표정이 있다면 미소를 지었으면 좋겠다.
영겁의 세월이 있으니 작은 것에 집착하지 말라는 넉넉한 미소의 아량을 보였으면 좋겠다.
벽송사를 오르며 나무를 보았다면 서암정사는 돌을 보게 된다.
헤아릴 수 없는 무게를 가지고 천지를 누르고 있는 돌 속에서 불제자들은 무엇을 찾고자
그토록 수많은 망치질 소리를 냈던 것일까? 오르는 길의 기둥조차 어깨를 움츠리게 한다.
좁은 돌길을 지나는 내 머리위로 수천 근의 무게로 나를 압도하는 바위들.
부처님의 무한한 세계로 통한다는 대방광문이건만 마음은 아직도 속세의 마음이 커서 두려움이 앞선다.
진리를 찾는 사람에게는 하찮은 것이 없는 모양이다.
그저 크기만 한 바위에 신묘한 솜씨로 형상을 새겨 넣고 작은 탑을 얹어 바위가 아닌
새로운 존재를 만들어 낸다.
바위에 얹어진 탑이 손쉽게 높이를 올리려는 장인의 게으름 때문은 아닐 것이다.
한참을 들여다보니 헤아릴 수 없는 번뇌와 무거운 고해의 끝에 도달할 수 있는
한줄기 이상향의 희망을 보는 것 같아 신비로운 기분에 빠져든다.
작고 사랑스러운 돌탑은 특별히 정성을 들이지도 않은 것 같다.
그런데 자연스럽게 그 옆에 서서 돌탑의 시선에 동참하게 된다. 친근하고 외롭지 않은 느낌…
나를 보지 말고 내가 보는 곳을 같이 보자고 나지막이 말했던 친구가 생각난다.
여기가 극락이라고 말하는 작은 부처는 크게 반겨주지도 내치지도 않는 모습이다.
이 세계에 들어오는 것은 너의 선택이라는 듯 옅은 미소를 보이면서도
길을 인도할 불빛을 들고 있는 따뜻한 마음이 감사하다.
서암정사의 사천왕은 바위 절벽의 한쪽에 등을 붙이고 서있다.
무엇이 이들을 돌 속에서 꺼낸 것일까? 살아있는 듯, 천근의 무게를 이겨내는 힘으로 버티고 있는
불상의 모습은 웅장함을 넘어 압도적이다.
나를 인도하는 길 옆의 평범한 바위들조차 비범하게 느껴지는
석굴법당의 입구로 가는 걸음이 무겁게 느껴진다.
알 수 없는 경외감으로 일말의 두려움까지 느껴지는 그곳에 무거운 마음을 안고 발걸음을 딛는다.
하나의 진리를 얻기 위해 수천 근의 돌을 두부 자르듯 잘라내며
그 속의 부처님을 꺼낸 사람들의 마음의 무게가 나를 더욱 작아지게 만들고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한다.
강함과 부드러움이 공존하는 공간에서 이제야 마음을 내려놓는 법을 배운다.
작은 부처를 관세음보살을 인도하는 걸까? 아니면 관세음보살이 부처와 놀아주는 걸까?
부처의 해맑은 미소를 보며 내 입가에도 기분 좋은 미소가 떠올랐다.
극락의 모습을 살짝 엿본 느낌…
돌이켜보면 흩어진 마음을 다시 세워 힘차게 전진할 힘을 얻고자 떠난 여정이었다.
하지만 사찰이 알려준 것은 욕심을 버리라는 것. 천 년의 세월 동안 굳건한 미소로
같은 자리를 증언하고 있는 모습 앞에 내 작은 욕심은 하나의 티끌에 불과했다.
살다 보면 또다시 사람들과 부대끼고, 끝 모를 욕심으로 가슴에 스스로 불을 당길 때가 있겠지.
그럴 때면 이곳을 찾을 것이다. 억겁의 세월 동안 나무와 돌이 함께 어울려 꿈꾸는 그곳에서
또다시 겁화와 같이 나를 괴롭히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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