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둘레보고

오랜 만에 나선 길을 앞에 두고 마음이 설렌다.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은 서로 예절 따질 것 없이 편안하게 누워서 어서 오라 말하는 오랜 친구처럼 느껴진다. 마음은 벌써부터 햇살 따뜻한 산의 품속에 안겨있다.

산이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초록의 싱그러움은 가셨지만 원숙한 여인의 미소처럼 차분한 색으로 곱게 화장을 하고 있었다.
숲으로 들어가는 입구부터 좁을 길을 따라 다양한 색의 향연이 시작되고 있었다.

물이 없는 산은 메마른 사람처럼 쉽게 다가가기가 어렵다.
멀리서 들리는 시냇물 소리에도 마음이 부드러워진다. 기어이 물길을 찾아가서 바위에 앉고, 조금 더 욕심을 내서 신발까지 벗는다. 자연이 마련해 놓은 쉼터에서 긴장을 덜어낸다.

축제의 절정을 알리는 붉은 폭죽처럼 벌써부터 산의 여기저기에는 붉은색 단풍이 한껏 멋을 내고 있다.
붉은 색 춤사위처럼 화려한 단풍이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그 화려함에 취해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의 기운을 마음껏 받아들였다.

붉은 색이 축제의 절정이라면 갈색은 산이 마련한 작은 공연과 같다.
그 공연의 주인공은 바람에 춤을 추는 갈대.
헬기의 착륙을 위해 마련한 공간에도 자연은 손을 뻗어 자신만의 공연장을 만들었다.

산행에 가까운 둘레길이자만 기분 좋은 땀은 나를 더욱더 상쾌하게 만든다.
높이 올라갈수록 산의 정기는 더욱 깊어지고, 구불구불 산의 모양대로 뻗은 길은 직선으로 쭉 뻗은 길보다 마음을 더 편하게 한다.

우거진 숲을 벗어나 좀더 넓은 시야가 드러나는 곳에서야 산의 모양을 제대로 볼 수 있다.
밑에서 바라본 산은 아버지의 턱밑처럼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보였는데 점차 오를 수록 친구의 어깨와 같은 모습이다.

산 너머에 산이 보이고 그 산 너머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까지 보이는 듯 하다.
밥그릇의 물처럼 작게 보이지만 계곡 사이에 갇힌 물은 수많은 사람들의 생활의 기반이 되는 것이리라.
짙은 숲을 뚫고 나와 대지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해본다.

산허리를 넘어 내려오는 길에서 만난 수많은 색의 향연. 붉은색, 초록색, 갈색, 흑색, 노란색…
수채화 물감을 물통 속에 뚝뚝 떨어뜨리면 저런 모습이 나올 수 있을까?
오직 자연만이 보여줄 수 있는 그림 앞에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붉디 붉은 단풍이 마음 속에 약속의 도장을 찍어놓았다.
항상 변함없이 이곳을 지키겠다고, 내가 전해준 기운이 떨어져서 삶이 힘들고 지친다면 언제라도 다시 오라고, 산은 넉넉한 품으로 너를 안아줄 것이라고…

산허리를 넘어 내려오는 길에서 만난 수많은 색의 향연. 붉은색, 초록색, 갈색, 흑색, 노란색…
수채화 물감을 물통 속에 뚝뚝 떨어뜨리면 저런 모습이 나올 수 있을까?
오직 자연만이 보여줄 수 있는 그림 앞에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사람이 찾지 않더라도 자연은 일 년에 한번은 이렇게 축제를 연다.
누구나 그 축제에 초대받지만 그 사실을 모를 뿐이다.
정다운 이별을 고하듯 길 옆에 나란히 선 나무들조차 나의 마음에 새로운 에너지를 채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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