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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한지 조형가, 닥종이 공예작가

지리산, 그리고 사람

소빈 선생 사진

소빈 선생

남원 한지조형가 기다림은 늘 우리곁에 머문다.
나는 한지를 재료로 인형 작업을 하는 작가로서 나의 일상을 화려하지 않은 잔잔한 감동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소빈 선생 사진
"수처락(隨處樂), 어디에 있든 그곳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전라북도 남원시 조산동. 수처락은 한지조형가 소빈선생의 작업실이다. '수처락'이란 말처럼 그곳에는 사람의 손 떼가 묻어있는 아늑한 공간속에 풋풋한 즐거움이 넘쳐난다. 수처락은 5년 전 소빈선생이 쓰러져 가는 한옥을 손수 다듬어 지금과 같은 문화공간으로 만든 곳이다.
실내에 들어서면 아름다운 향기의 생화가 정성스럽게 놓여 있어 손님을 반긴다. 손님을 찾아오면 늘 꽃을 준비하는 소빈선생의 작은 습관 덕분이다. 작업실에 들어서자 인형들이 마주본 채로, 때로는 선 채로, 때로는 앉은 채로 정지되어 있다. 조금 전까지 서로 정겨운 대화를 나누다 순식간에 멈춰선 아이들 같다. 환한 표정에서, 놀란 표정에서, 그리고 슬픈 표정에서 긴 이야기가 담겨져 있는 듯하다. 수처락에서 소빈선생에게 그의 작품세계와 인형에 대해 물어봤다.

종이조형은 언제 시작했나
지금부터 15년 전입니다. 아이가 없는 형수님에게 아이를 대신해 뭘 해드릴 것이 없을까 고민하다 인형을 선물하려고 시작한 것이 한지조형이에요. 정말로 사소하게 시작했는데 이젠 전업이 되었네요.

예술적 감각이 뛰어나셨나봐요
전 원래 문학을 좋아했어요. 항상 학교 대표로 상을 받기도 했죠. 근데 사회 초년시절에 생활을 도와준 것은 음악이었어요. 초등학교 때 길에서 주은 기타를 가지고 놀던 것이 밥 먹고 살게 되었죠. 한 15년 카페에서 노래를 하며 생활을 했어요. 놀랍죠. 근데 이젠 한지조형을 해요. 미술은 생활처럼 좋아했어요. 미술, 음악, 문학 3가지를 딱 삼등분해서 받았던 것 같아요. 학교 다닐 때 문학도, 음악도, 미술도 대표였으니까요. 하지만 어느 것도 내놓을만한 실력이 아니었나 봐요. 한 가지에 몰입되어야 하는데... 어쨌든 지금은 한지조형이 즐거워요.

등단은
2001년 원주한지문화재의 대한민국한지대전에서 은상을 수상했어요. 사실 처녀작인데 입상을 해 너무나 놀랐죠. 그 후 계속해서 공모전에 응모했는데 다음해에 낙선, 그 다음해에 금상. 그리고 그 다음해에 대상을 받았어요. 그 작품이 '반추'에요. 한 1m정도 되는 노인의 신체를 왜곡시켰어요. 낙엽을 쓸고 있는 노인을 만들면서 삶을 관조하는 의미에서 '반추'라는 제목을 붙였죠. 그때부터 이름이 알려지면서 인형과의 대화로 일상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반추'에 대해
그때가 전북대 미대 대학원을 다닐 때인데 2년 동안 큰 고민에 빠져 있었어요. 늘 해도해도 같은 작품만 나와서요. 인형을 만들고 별도로 옷을 제작해 입히는 방식으로 작업을 했는데 만족스럽지가 않았어요, 시간이 지나면 옷이 변색되거나 해져서 보기가 싫더라구요. 그래서 처음부터 한 덩어리로 된 인형을 만들어 봤어요. 작가의 의도를 담기에도 좋을 듯 했어요. 그것이 바로 반추에요.

소빈의 작품세계는
한지조형 작품은 보통 대작이 많이 나와요. 농악이라든지 가족이라든지 하나의 작품에 여러 명의 인형이 등장하죠. 이에 반해 전 늘 단품으로 작업을 해요. 대신 스토리를 부여하죠. 추억을 투영시키는 거죠. 작은 손도 그냥 손 같지만 그 손 끝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곳에 작품의 의도를 담을 때도 있죠. 그것을 보고 사람들이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합니다.

추억을 투영시킨다는 것은
제가 추구하는 미는 슬픔입니다. 슬픔으로 시작해서 기다림, 그리움 그리고 희망을 표현해요. 제가 15년 전에 처음으로 한 인형을 만들었는데 그 아이가 누구냐 하면요. 한 30년 정도 되었을 겁니다. 제가 5살 때 엄마를 따라 남원 춘향제를 갔는데 놀러간 것이 아니라 엄마가 떡을 팔러 가는데 따라간 거에요. 부자집에서 살다 가난한 집으로 시집와 떡을 팔다 외할머니에게 들켰나봐요. 엄마가 바로 짐을 싸고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데 그게 그렇게 슬픈거에요. 엄마 손도 잡지 못하고 그 뒤를 졸졸 따라갔는데... 그 아이가 바로 저의 첫 작품이에요.

대표작은
'순이'에요. 바로 이 아이입니다. 작품 마다 다 제목이 있지만 크게 보면 순이의 연작이에요. 2006년 첫 개인전을 열 때 순이를 만들었는데 높은 완성도에 매우 기뻐했던 작품입니다. 정이 많이 가는 아이죠. 당시 서울 인사동에서 전시회를 하는데 누가 대형 브로셔를 가져가 버린 거에요. 일을 망쳤다는 생각보다 얼마나 좋으면 가져갔을까해서 오히려 기뻐했어요. 그때 순이 덕분에 많은 사람이 전시관을 다녀갔어요. 무명에 가까운 저의 작품을 보려고 하루에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다녀갔으니까요.

또 다른 작품은
'엄마가 20원을 빌려 조랑말을 사주셨다' '더 박서' 등이 기억에 남아요. '엄마가 20원을 빌려 조랑말을 사주셨다'는 제가 어릴 때 어머니께서 그렇게 갖고 싶었던 조랑말 장난감을 남에게 돌을 빌려서 사주셨는데 그 상황을 표현해 본겁니다.

전시회 때 무척 반응이 좋았던 작품중 하나였죠. '더박서'는 제 친형의 꿈을 표현한 겁니다. 동시에 꿈을 잃어가는 현대인에게 꿈을 되찾아주려는 뜻을 담고 있죠.

새로운 전시회는
요즘은 새로운 형태의 부조작품을 구상중이에요. '모수' 같은 작품이 좋은 예입니다. 오래된 나무와 한지의 조화도 시도하고 있어요. 옻칠을 한 불상을 만들기도 하죠. 옻칠을 하면 거의 영구적으로 보관할 수 있게 되죠.

어떻게 만드는지
한지를 뭉쳐 풀칠을 해서 계속 붙여나가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종이를 붙이고, 말리고, 덧붙여 나가는 거죠. 처음에는 주름이 많이 생기는데 주름을 펴면서 정리하고 다시 종이를 붙이는 과정을 반복하면 됩니다. 그리고 염색한 한지를 붙여 얼굴색을 표현하죠.

사실 마무리에서는 표정에 80%의 비중을 둡니다. 이때 서두르면 안돼요. 말리고 붙이는데 충분한 시간을 가져야 종이가 썩지 않고 오래도록 보관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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