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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혜마을
백혜마을은 진주읍지인 ‘진양지’에 화개의 10개 마을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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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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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정보
문 의 처055-880-6050
소 재 지경남 하동군 화개면 탑리백혜마을
이용시간 
쉬 는 날 
입 장 료무료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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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소개
주변정보
백혜마을에는 두 개의 작은 천이 감싸고 내려가고 있다. 그 천 사이로 형성된 이 마을에는 예전에 거의 논두락 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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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 10년 (1632년) 성여신 등이 편찬한 진주읍지인 ‘진양지’에 화개의 10개 마을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중 하나이다. 가탄마을의 뒷 산등성에 자리하고 있는 작은 마을인데 형성은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주민들은 마을을 배혜, 뱃골 등으로 부르는데 무슨 뜻일까? 이곳에 배를 대는 것과는 상관없는 높은 곳인데 말이다. 우리나라 산지 지명에 이렇게 ‘백’이나 ‘배’자가 들어간 것이 무척 많다. 이는 산을 뜻하는 ‘박’이 변해서 오는 말이다. 결국 뱃고개, 산넘는 고개마을 이라는 뜻의 배치, 배티, 배태라는 말이 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마을에는 두 개의 작은 천이 감싸고 내려가고 있다. 그 천 사이로 형성된 이 마을에는 예전에 거의 논두락 이었다고 한다. 아마도 아래쪽의 마을은 수해로부터 안전하지 못하고, 마을 아래에 의외로 넓은 들이 있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 들은 배부른 사람의 배같이 도두락 하다하여 뱃몬당이라고도 한다. 이 역시 뱃골이라는 이름과 궤를 같이 한다. 진양지에 따르면 당시 화개와 악양의 주민을 통틀어도 500여명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화개의 스님들은 주민의 수배에 달했다고 전해진다. 심지어 화개현의 현 우두머리나 현리를 승수(스님의 우두머리) 라고 불렀다고 한다. 스님은 아니지만 숭유억불 정책을 폈던 조선시대까지 행정의 우두머리가 스님의 복식과 삭발을 했으니 화개골이 얼마나 불교가 번성했는지 알 수 있다. 현재 화개장터와 화개면 사무소, 우체국 등이 있는 탑리가 예전에는 모두 봉성사라는 신라말, 고려초의 것으로 보이는 큰 절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언제 폐사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입구부터 그런 큰 절이 있었으니 농사지을 수 있는 터가 있는 이곳에 마을이 당연히 생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지금 이 마을 주민들은 자식들이 외지에 나가 거의 잘 되었다고 자랑이 많으시다. 예전에는 비탈에서 어렵게 농사 지으며 살았지만 지금은 자식들 덕에 편안하게 지내신다고. 그러나 이 마을의 논뿐만 아니라 차밭도 이제는 일할 사람이 갈수록 없어진다고 한다. 돈도 안되고 어르신들은 자꾸 세상을 뜨시니 앞으로 이 ‘산골마을’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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