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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죽마을
을 뒤편에 문수리와 문수 저수지가 있다. 인근에는 하죽마을이 있으며 남동쪽은 단산마을과 인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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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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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정보
문 의 처061-780-2941
소 재 지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대내안길 30, (내죽마을)
이용시간 
쉬 는 날 
입 장 료무료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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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소개
주변정보
대나무가 큰 마을에 울창하여 대(竹)와 문수천의 시냇물을 일컬어 내자로 ‘대내’ 라고 불렸다는 설과 대숲 안쪽이라 ‘내죽’이라 불리웠다는 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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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500여년전 형성된 마을이라 한다. 대나무가 큰 마을에 울창하여 대(竹)와 문수천의 시냇물을 일컬어 내자로 ‘대내’ 라고 불렸다는 설과 대숲 안쪽이라 ‘내죽’이라 불리웠다는 설이 있다. 마을 뒤편에 문수리와 문수 저수지가 있다. 인근에는 하죽마을이 있으며 남동쪽은 단산마을과 인접하고 있다. 이 일대를 옛날에는 대나무골이라 하고 웃대내, 아랫대내, 안대내로 나뉘었는데 그 중 안대내에 해당된다. 주민들은 온화하고 성실하며 남향에다 들이 좋은 마을이라 평화로웠으나 지리산 바로 아래 문수골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보니 여수, 순천 사건 당시 빨치산들이 마을을 지나 위쪽 영암촌에 본부를 구축하고 활동하였다. 그러더 보니 밤에는 빨치산들의 부역, 낮에는 군인과 경찰들의 고초에 많이 시달렸다고 한다.
옛날 문수천의 물을 논으로 대기 위해 보를 만들었는데 암석이 겹쳐서 보의 입구를 뚫을 수 없었다 한다. 어느날 문득 하룻밤 사이에 죽순이 암석 사이에 돋아 나와 바위가 갈라져 보를 막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 마을에도 금환락지의 명당이라, 새로운 이상향에 대한 꿈을 가지고 구한말부터 많은 이들이 이주해 왔으니 그 중 율계 정기(1879-1950) 선생도 있었다. 그 분은 경남 합천 출신으로 학문적 소양이 높았으나 일제의 침략으로 벼슬길이 막히자 1927년 제자들과 함께 이 마을에 와서 덕천정을 건립하여 후학들에게 애국사상과 민족정신 교육에 힘썼다고 한다. 지금도 그 제자들이 뜻을 모아 덕천사를 건립하여 매년 3월에 제향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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