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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마을
예로부터 바더리, 바다리 라고 불리웠는데 배를 대는 곳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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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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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정보
문 의 처061-780-2941
소 재 지전남 구례군 토지면 파도리파도마을
이용시간 
쉬 는 날 
입 장 료무료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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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소개
주변정보
파도마을은 지리산 노고단에서 왕시루봉으로 이어져 끝봉에서 낭떠러지처럼 뚝 떨어진 터, 계족산과 백운산을 강 건너로 바라보며 동서양쪽에 구릉이 있어 좌청룡 우백호의 명당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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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바더리, 바다리 라고 불리웠는데 배를 대는 곳이라는 뜻이다. 섬진강변이라 안개낀 날이 많다. 지리산 노고단에서 왕시루봉으로 이어져 끝봉에서 낭떠러지처럼 뚝 떨어진 터, 계족산과 백운산을 강 건너로 바라보며 동서양쪽에 구릉이 있어 좌청룡 우백호의 명당터이다. 좌측에 있는 낮은 산을 청룡등이라 부르고 있다.

구만마을과 더불어 토지면의 중심을 이루는 큰 마을로서 비교적 다른 마을에 비해서 지식인들도 많고 일제시대에는 하동포구 등을 이용해 일본유학을 다녀온 사람들도 많이 거주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해방후 시류를 타고 일찍 사회주의 사상을 이상을 추구하는 개화사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파도리를 찾아든 선조들 자체가 임진왜란과 구한말 새로운 이상을 찾아온 사람들이었다는 혈연적인 특성도 곁들였다. 이들은 해방 이후 별다른 움직임 없이 살았다가 1947년부터 남한 단독정부 수립추진을 계기로 좌우대립이 심해지자 활발히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 해 3월 1일 면민들이 토지초등학교에서 만세대회를 추진하게 되고 그 정보가 경찰에 알려져 마을 아래쪽 다리거리의 파출소를 무장경찰들이 봉쇄하였다. 마을 옆 언덕배기에 모인 300여명의 주민들은 청년단의 주도아래 만세 부르고 행진하여, 경찰들과 실랑이를 벌이다 갑자기 실탄을 발포한 경찰들에 의해 23명의 주민들이 그 자리에서 희생당하였다.

지금도 주민들은 그날을 파도리 3,1 만세사건이라 부른다. 이곳 마을 언덕배기는 지금도 경치는 좋지만 바람이 세기로 유명한 곳이다. 산과 강이 만나 어우러지는 평화로운 마을이지만 외부와의 길목이 되어 많은 세파를 겪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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