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마을은 1590년경 금령 김씨가 정착하였고, 1800년경 창녕 성씨가 입주하여 큰 마을이 되었다 한다.
지리산의 많은 곳이 그러하듯이 이 마을도 임진왜란 당시 피난 온 사람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한 마을이다. 1590년경 금령 김씨가 정착하였고, 1800년경 창녕 성씨가 입주하여 큰 마을이 되었다 한다. 보통 한수천을 따라 안한수내 (내한), 한수내 (외한)으로 불리는데 천의 물이 맑고 차서 그렇다고 한다. 둘레길이 지나가는 근처의 신촌은 여수순천 반란 사건 떼 소실되었다가 정착사업으로 새로 터를 잡아 마을이 되었다. 원송마을은 외한에서 섬진강을 따라 구례쪽으로 조금 더 가면 있는데 그곳이 일제시대때까지 소나무 정자가 있다 하여 송정, 솔정지, 송쟁이 등으로 불리웠던 곳이다. 솔정지는 대체로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손님을 마중하고 전송하며, 일꾼이나 길손들이 쉬어가는 곳을 일컫는다.
지금은 안한수내 까지 2차선 포장도로가 뚫려 교통이 편리하지만 섬진강변 원송과 외한마을은 안개가 많이 낀다. 송정마을은 농지가 비좁고 협소하여 자급자족이 어려운 마을이었으나 지금은 밤나무가 많고, 매실, 고로쇠 등으로 소득을 올리고 있다. 특히 원송과 외한마을은 섬진강에 의존해 고기를 잡아 생활하기도 하였다. 지금도 유명한 민물고기 식당들이 있는데 직접 배를 타고 섬진강에 나아가 고기나 참게를 잡는다. 배는 섬진강 하류 광양 망덕포구 근처의 작은 조선소에서 건조하며, 주로 쏘가리, 은어, 농어, 숭어 등을 많이 잡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