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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탄마을
신선이 살면서 아름다운 여울에 낚싯대를 담궜다 하여 가탄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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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정보
문 의 처055-880-6050
소 재 지경남 하동군 화개면 탑리374-2
이용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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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장 료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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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소개
주변정보
화개면 소재지인 원탑의 동북쪽에 있다. 화개천 옆으로 걸쳐진 마을이라는 뜻으로 가여울이 가탄으로 불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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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개면 소재지인 원탑의 동북쪽에 있다. 화개천 옆으로 걸쳐진 마을이라는 뜻으로 가여울이 가탄으로 불리운다. 지금도 주민들은 가여울, 개롤이라 부른다. 세인들은 아름다운 천이라는 뜻으로 다시 새기니 마을 이름에도 생각과 마음이 담긴다.

또한 신선이 살면서 아름다운 여울에 낚싯대를 담궜다 하여 가탄이라고도 한다. 여기의 신선은 조선초 성리학자 일두 정여창 선생을 가리키며, 선생이 낚시를 한 곳이 명당이라 한다. 한국의 유학사를 빛낸 학자들은 많다. 특히 문묘(文廟)는 공자를 비롯한 여러 성현을 모셔놓고 거국적으로 제향하는 사당으로 학문과 행실의 모든 면에 있어서 유교문화의 사표가 되는 인물만을 배향해 온 곳이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문묘에 배향하기 위한 심의와 여론 수렴의 과정은 수십 년이 걸린다고 하는데,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 선생의 경우도 40년 이상이 걸렸다고 한다. 인(仁)을 보편적 가치의 정점으로 삼아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할 것을 주장한 실천유학의 선구자인 정여창, 그의 고향과 활동공간은 지리산 건너 함양 안의였다. 그런데 그의 흔적이 왜 이곳에서 나타날까? 그가 연산군 때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귀양가고,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부관참시까지 당했음은 당시 시대상에 정면으로 맞섰던 인물이었음을 반증한다. 그런 인물이 과거 많은 이들이 이상향으로 꼽은 청학동이나 고운 최치원의 발길을 따라 이곳 화개로 흘러 들었다. 정여창 선생의 자기 기록은 없지만 이곳 주민들은 시대정신을 고뇌하며 지리산을 떠돌았던 그 분을 구전으로 전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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