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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곡분교(피아골)
연곡분교는 피아골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초등학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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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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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정보
문 의 처061-782-6124
소 재 지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남산길 18
이용시간 
쉬 는 날 
입 장 료무료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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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소개
주변정보
피아골은 연곡골 안쪽 연곡사 위를 주로 일컫는데 그곳에 직전마을이 있고, 그곳에 연곡분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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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골은 연곡골 안쪽 연곡사 위를 주로 일컫는데 그곳에 직전마을이 있다. 직전, 직전이라 함은 피를 재배하는 밭이라는 뜻인데 그래서 지금도 많은 이들이 피밭골 > 피앗골 > 피아골로 되었다고 소개한다. 실제 구황작물로 예전에 화전민들이 일구던 피밭이라는 것이 있기도 하였다. 또 다른 설은 접두사 [빗]은 기울거나 어긋남을 나타내는데, 경사진 땅을 비탈이라 하듯이 경사진 마을을 [빗골]이라 하였다는 것이다. 경음화 과정을 거치면서 빗골 > 핏골 > 피아골 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빗재 > 핏재 를 직치(稷峙)로 부르기도 하고, 인근 화개골에 빗점골 이라는 지명 등도 유사하게 볼 수 있다. 무엇이 사실이든 모두 피아골의 깊이와 척박함을 표현한 것이다.

이런 골짜기의 삶은 얼마나 고단했을까. 삶의 고단함도 그러하지만 역사적으로 연곡사는 임진왜란 때 불타고 한말 고광순 의병부대가 일본군에 의해 전멸당한 곳이기도 하다. 거기다가 피아골 안쪽에는 여수순천 사건 이후 빨치산들의 근거지가 되어서 많은 피해가 있었던 곳이다. 특히 6.25 한국전쟁 당시에는 인근 전주민이 계곡하류의 외곡마을 등지로 소개되었다. 그 후 농번기때 겨우 당국의 허가를 얻어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출입하여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소가 없으니 장정 두 명이 번갈아 가며 쟁기질을 하면서 논을 갈아 모내기를 하였다 한다. 더 힘든 것은 출입을 할 때 팔목에 도장을 찍어서 표시를 해 두는데 이것이 지워지면 빨치산 부역자로 낙인찍혀 곤란을 겪기도 하고, 시간이 지났는데 나오지 못하면 빨치산으로 보고 무차별 공격을 했다고 한다.

피아골은 단풍으로 유명하여 지리 10경중 하나이다. 피아골 단풍을 16세기 대학자 남명 조식 선생은 "삼홍(三紅)"이라 하였는데 가을 단풍에 온 산이 붉어 "산홍(山紅)", 그 붉은 빛이 물에 비쳐 "수홍(水紅)", 그리고 물속의 붉은 빛을 보는 사람의 얼굴이 붉다하여 "인홍(人紅)"이라고 할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지만 그 속의 삶은 아름답지만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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