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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촌마을
면소재지인 원촌마을은 산동원이 있었기 때문에 ‘원굴’ ‘원동’이라고 불렀다. 그러므로 원촌은 산동원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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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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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정보
문 의 처061-780-2608
소 재 지전남 구례군 산동면 원촌리원촌마을
이용시간 
쉬 는 날 
입 장 료무료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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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소개
주변정보
산동면의 면소재지 마을
면소재지인 원촌마을은 산동원이 있었기 때문에 ‘원굴’ ‘원동’이라고 불렀다. 산동면의 중앙에 위치하여 남쪽을 바라보고 있으며, 풍수지리상 배 모양의 형국이어서 토박이는 재산을 지속하지 못하고 타지에서 들어온 사람은 성공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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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면은 백제시대에는 구차례현에 속하였고 신라시대(통삼이후)에는 곡성군, 고려시대에는 남원부에 속하였다. 조선시대인 1906년(광무10년) 구례군에 편입되면서 내산면과 외산면으로 분할되었고 1932년에 다시 합병하여 산동면으로 칭하였다.

면소재지인 원촌마을은 산동원이 있었기 때문에 ‘원굴’ ‘원동’이라고 불렀다. 그러므로 원촌은 산동원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조선 성종때 김씨와 공씨가 처음 정착하여 설촌하였으며 임진왜란후에 이씨, 박씨, 유씨가 정착하면서 큰마을로 발전되어 원을 두었으나 여순반란사건과 6.25동란으로 전가옥의 80%가 전소 된 후 다시 복구되었다. 마을 지명은 당초 "월천"이라 부르다가 원촌으로 바뀌었으며 그후 다시 원이 있었던 곳이라 하여 원촌으로 개칭하였다.

기록에 보면 옛날에 산동원이 계적동에 있었던 것을 인조 23년(1645년)에 운제(지금의 원촌)으로 옮겼고 이름도 운제원으로 개칭된 것이다. 산동면의 중앙에 위치하여 남쪽을 바라보고 있다. 풍수지리상 배 모양의 형국이어서 토박이는 재산을 지속하지 못하고 타지에서 들어온 사람은 큰 돈은 못벌어도 다 성공을 한다고 전해지며 돈벌어서 나간 사람들은 망한다는 전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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