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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충복비
임진왜란 당시 홀로 왜군의 출입을 막아 장수향교를 지킨 충복 정경손을 기리는 비로 현재 장수향교 앞에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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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정보
문 의 처063-350-2679
소 재 지전라북도 장수군 장수읍 향교길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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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장 료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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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삼절 중 한명인 정충복을 기리는 비
임진왜란 당시 홀로 왜군의 출입을 막아 장수향교를 지킨 정경손은 군민들에 의하여 주논개(朱論介)·순의리(殉義吏)와 더불어 장수삼절(長水三絶)의 하나로 추앙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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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재란 때 왜적의 침입으로부터 장수향교(長水鄕校)를 보존한 정경손(丁敬孫)의 업적을 기린 비로, 1846년(헌종 12) 장수향교 문 앞에 건립하였으며,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38호로 지정되었다.

1597년(선조 30) 임진왜란 때 왜적은 전주성을 공격하기 위하여 금산(錦山)·진안(鎭安)·용담(龍潭) 등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이 때 한 부대가 육십령을 넘어 장수지방에 이르렀는데, 이 때 장수현감을 비롯한 모든 관군들이 도망쳐 버렸다.

그러나 향교의 교직(校直)이었던 정경손이 홀로 "만약 문에 들려거든 내 목을 먼저 베고 들라"고 말하며 향교에 남아 적병의 출입을 막았다. 그의 의기와 충성심에 감복한 적장이 오히려 “이 성역에는 들어가지 말라.”는 뜻의 '본성역물범(本聖域勿犯)'이라는 신표를 쓰고 향교 정문에 붙여줌으로써 건물을 보전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 각지의 향교가 소실되었으나, 장수향교만이 전화르 입지않고 보존되게 된 이유이다.

그 뒤 1846년(헌종 12) 현감 정주석(鄭胄錫)이 정경손의 업적을 추모하여 향교 앞에 호성충복정경손수명비(護聖忠僕丁敬孫竪名碑)를 세웠다. 뒤에 정경손은 군민들에 의하여 주논개(朱論介)·순의리(殉義吏)와 더불어 장수삼절(長水三絶)의 하나로 추앙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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