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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조식 유적지
조선 중기의 유명한 유학자인 남명 조식의 유적으로 사리(絲里)에는 산천재, 별묘, 신도비, 묘비가 있고, 원리(院里)에는 덕천서원과 세심정 등의 유적지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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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정보
문 의 처055-970-6421
소 재 지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 남명로 3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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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 는 날매주 월요일
입 장 료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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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선비인 남명 선생의 유적지
조선 중기의 유명한 유학자인 남명 조식의 유적이다. 조식 선생은 많은 벼슬이 내려졌으나 모두 거절하고,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평생을 보냈다. 이 유적은 두 곳으로 나뉘는데, 사리(絲里)에는 산천재, 별묘, 신도비, 묘비가 있고, 원리(院里)에는 덕천서원과 세심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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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유명한 유학자인 남명 조식의 유적이다. 조식 선생은 많은 벼슬이 내려졌으나 모두 거절하고,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평생을 보냈다. 이 유적은 두 곳으로 나뉘는데, 사리(絲里)에는 산천재, 별묘, 신도비, 묘비가 있고, 원리(院里)에는 덕천서원과 세심정이 있다.

산천재는 선생이 학문을 닦고 연구하던 곳으로 명종 16년(1561)에 세웠고, 순조 18년(1818)에 고쳐졌다. 규모는 앞면 2칸, 옆면 2칸이다. 덕천서원은 선조 9년(1576)에 세웠고, 앞면 5칸, 옆면 2칸의 현재 건물은 1926년에 고쳐 지은 것이다.

세심정은 선조 15년(1582)에 처음 세웠다. 조식유적(曺植遺跡)은 조선중기(朝鮮中期)의 위대(偉大)한 유현(儒賢)이며 뛰어난 실천(實踐) 도학자(道學者)였던 남명선생(南冥先生)이 만년(晩年)에 강학(講學)하던 산천재(山天齋)를 비롯하여 사후(死後) 그를 모시던 덕천서원(德川書院) 등을 일괄(一括) 지정(指定)한 유적지(遺跡地)이다.

남명(南冥) 조식(曺植)(燕山君 7년(年) 1501∼선조(宣祖) 5년(年), 자건중(字楗仲), 별호산해(別號山海), 본관 창녕(本貫昌寧))은 남다른 재질(才質)과 용공(用工)(절제(節制))으로 일찍부터 학덕(學德)을 갖추어 대성(大成)하였으나 사환(仕宦)(벼슬)에는 나아가지 않고, 평생(平生)동안 선비와 처사(處士)(산림(山林))로서 굳건히 일관(一貫)하였다.

38세 때 헌릉 참봉(獻陵參奉)을 시작으로 여러 번 벼슬이 제수(除授)되고 왕(王)이 면대(面對)하기를 청(請)(징소(徵召)) 하였으나 매번 상소(上疏)(봉사(封事))로써 의견(疑見)을 개진(開陣) 하였을 뿐 나아가지 않았고, 오직 66세(명종(明宗) 21, 1566) 되던 해 10월(月) 초(初)에 상경(上京)하여 왕(王)을 잠시(暫時) 뵈옵고는 곧 귀향(歸鄕)하였다. 사후(死後) 광해군(光海君) 7년(年)(1615)에 영의정(領議政)으로 추증(追贈)되고 시호(諡號)를 문정(文貞)이라 하였다.
1. 백운동계곡, 그리고 남명선생남명(南冥) 조식(曺植)의 체취가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계곡이 백운동 계곡이다. 일찍이 남명이 남겼다는 백운동(白雲洞), 용문동천(龍門洞天), 영남제일천석(嶺南第一泉石), 남명선생장지소(南冥先生杖之所) 등의 글자가 암석에 새겨져 있어 남명 조식 선생의 흔적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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