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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송사
벽송사는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의 야전병원으로 이용되는 등 전란의 비극을 담고 있는 천년고찰이다. 특히 벽송사의 장승은 사천왕의 역할을 대신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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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정보
문 의 처055-962-5661
소 재 지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광점길 27-177
이용시간-
쉬 는 날 
입 장 료무료
홈페이지http://www.amita.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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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란의 비극을 간진한 사찰
벽송사의 창건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절 뒤쪽의 창건당시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3층석탑으로 미루어볼 때 그 시기를 신라말이나 고려초로 보고 있으며 현재 3층석탑은 보물 제474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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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송사의 창건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절 뒤쪽의 창건당시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3층석탑으로 미루어볼 때 그 시기를 신라말이나 고려초로 보고 있으며 현재 3층석탑은 보물 제474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 중종 경진년(1520)에 벽송 지엄대사(碧松 智嚴大師)가 중창, 『벽송사』라 하였다고 전한다. 서산대사 청허휴정(淸虛休靜)이전에 한국선맥을 이어온 벽계정심(碧溪正心)과 벽송지엄(碧松智嚴), 부용영관 뿐만 아니라 환성지안(喚醒志安), 서룡상민(瑞龍祥玟)등 조선 선맥을 빛낸 8분의 조사가 이 벽송사에서 수도 정진한 도량으로써 한국선(禪)과 벽송사의 인연은 각별하다

숙종30년(1704) 실화(失火)로 소실(燒失)되었다가 환성지안(喚醒志安)대사가 중건하였고, 철종 원년(1850)에 서룡당 상민(瑞龍堂祥玟)대사가 중수하였으나 1950년 6.25동란때 다시 소실되어 1960년 원응 구한(元應 久閒)스님이 쓰러진 가람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특히 이 사찰은 1950년대 전란(戰亂)시 빨치산 루트로 사용되는 등 처참한 비극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때 인민군의 야전병원으로 이용됐다.

벽송사 나무장승은 그 풍부한 표정에서 민중미학의 본질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빼어난 장승가운데 하나이며, 순천 선암사 앞에 있었던 나무장승과 쌍벽을 이룰 만큼 조각솜씨도 뛰어나다. 전체 높이는 4m 정도 되는데, 예전에는 지하에 1m 정도가 묻혀 있고 썩은 몸통을 지탱하기 위해 둑을 쌓아 1m 정도가 더 묻혀 있어, 드러나 있는 것은 2m 정도였으나 현재는 벽송사 경내에 정려를 지어 보관하고 있다.

왼쪽 장승은 몸통 부분에 '금호장군' 이라 음각돼 있고, 오른쪽 장승은 '호법대장군'이라 음각돼 있다. 두 장승에 새겨진 명문으로 미루어, 사찰 입구에 세워져 사천왕이나 인왕의 역할을 대신하여 잡귀의 출입을 막는 수문장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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