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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관칠의사의 묘
정유재란과 병자호란에 의병을 일으킨 7인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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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정보
문 의 처061-780-0724
소 재 지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섬진강대로 4638-8
이용시간 
쉬 는 날 
입 장 료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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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의병 7인의 무덤
석주관 칠의사단에는 높이 77㎝, 폭 29.5㎝, 두께 12㎝의 똑같은 규모의 칠의사 단비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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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조 31년(1598) 정유재란 때 구례지방의 선비들이 의병을 일으켜 석주관을 사수하다 전사한 의사6인과 현감 이원춘이 석주관 전투에서 살아남아 그후 병자호란 때 재차 의병을 일으킨 의사1인을 모신 무덤이다.

석주관은 전라도와 경상도를 연결하는 요충지로서 나라에서도 구례현감 이원춘을 석주관 만호에 겸임케하여 방어하고 있었다. 선조 31년 (1598) 8월초 전라도 일대를 점령하고자 왜군이 이곳 석주관에 쳐들어오자 이원춘은 중과부적을 느끼고 남원성으로 후퇴하여 그곳에서 대항하다 전사하였다. 이때 구례의 선비 왕득인은 의병을 모집하여 진주에서 오는 왜적을 맞아 공격하다 전사하였다.

왜적이 구례의 마을에 들어와 방화와 약탈을 자행하자 구례현의 선비 이정익, 한호성, 양응록, 고정철, 오종, 왕의성 등이 모여 수백명의 의병을 모집하고 석주관을 지키던 중 다음해 봄 왜군의 공격에 대항하다 왕의성을 제외한 6의사는 순절하였고 왕의성은 살아 남아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때 나라를 구하고자 재차 의병을 일으켜 순절하니다. 순조 4년(1804) 나라에서는 이들 일곱 의사의 충절을 기려 각각 관직을 추증하였다.

현재 석주관 칠의사단에는 높이 77㎝, 폭 29.5㎝, 두께 12㎝의 똑같은 규모의 칠의사 단비(壇 )가 세워져 있는데 왼쪽으로부터 이원춘, 왕득인, 왕의성, 이정익, 한호성, 양응록, 고정철, 오종의 순서로 모셔져 있다. 한편 석주관 칠의사 유적의 입구 우측에는 새로이 칠의사의 정신을 기리고자 기념관이 건립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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