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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그리고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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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여행

지리산을 종주한다는 것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 최고봉을 등정했다는 의미로서가 아니라 마치 종교의 성지를 돌아본 느낌으로 와 닿는다. 지리산 종주는 우리나라 등산객들에게 항시 가지고 있는 동경 내지는 꿈같은 것이다. 지리산을 올곧게 돌아보기 위해 먼저 가야 할 곳은 성삼재. 구례에서 버스를 타면 된다. 넓은 주차장에 휴게소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테이크아웃이 되는 커피전문점까지 있어 산행을 앞두고 잠시 여유를 부리기에는 모자람이 없는 곳이다.

지리산 종주 여행의 일반적인 여정은 지리산 주릉의 산장에서 두 번의 밤을 보낸 뒤 3일째 아침
천왕봉에서 일출을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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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고단 피아골삼거리 임걸령 반야봉 화개재 뱀사골대피소 명선봉 토끼봉 연하천대피소 벽소령(벽소령대피소)
1일차 성삼재에서 노고단(1,507m)까지는 널따란 흙길이다. 발아래 펼쳐지는 구례와 섬진강을 감상하며 노고단산장을 지나 커다란 돌탑이 세워진 노고단에 도착한다. 커다란 돌탑이 있는 노고단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신라 시대엔 시조 박혁거세의 호위무사들이 심신수련장으로 삼기도 했다. 또 20세기 초반엔 외국의 선교사들이 여름에도 서늘한 이곳에 휴양시설을 지어놓고 여름을 지냈고, 한국전쟁 무렵엔 빨치산들이 근거지로 이용하기도 했다. 뛰어내려도 다치지 않을 것만 같은 지리산 운해를 감상하며 우리는 능선을 걷기 시작한다. 남서쪽 섬진강 자락에서 피어오른 운무가 파도처럼 몰려와 들판과 계곡을 덮고 산허리를 감돌아 흐르는 자연의 조화가 신비롭다. 나뭇잎에 맺힌 아침 이슬을 털어 가며 1시간쯤 걸으면 임걸령(1,320m)이다.
아늑한 숲속에 자리한 천혜의 요지인 이곳은 옛날에 '임걸'이라 불리는 의적의 본부였다. 임걸령에서는 반야봉(1,732m)을 향해 가야하는데 한참 동안 오르막길이다. 주릉에서 살짝 비껴난 덕에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주릉 실루엣이 환상적이다. 고사목들과 어울린 '반야봉 낙조'의 장관은 '지리 10경'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하지만 주로 낮에 이 구간을 지나게 돼 그 풍경을 보기는 쉽지 않다. 반야봉에서 산길을 내려서면 능선 남쪽마을과 북쪽 마을을 이어주던 옛길인 화개재다. 아침일찍 성삼재를 나섰다면 점심을 먹기 위해 북쪽 뱀사골산장으로 간다. 산장을 나서서는 토끼봉을 지나 총각샘에서 목을 축이고 명선봉을 넘어선 다음 연하천 산장까지 바로 가야 한다. 연하천 산장 다음 목적지는 벽소령이다. 이곳 대피소에서 꼬박 10시간을 걸어 온 첫날을 마감한다. 벽소령은 달빛이 좋기로 소문나 있다. 원시림과 고사목 위로 떠오르는 둥근 달은 차갑도록 시리고 푸르다.
가끔 이름 모를 짐승이 짖는 소리가 태고의 정적을 깰 뿐 산속의 밤은 아름답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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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벽소령대피소 영신봉 세석평전(세석대피소) 촛대봉 연하봉 장터목대피소
2일차 어제는 10시간쯤 걸렸지만, 오늘은 6시간쯤만 걸으면 목적지인 장터목까지 갈 수 있다. 느지막하게 벽소령 대피소를 나서도 될 만큼 여유롭다. 넓은 벽소령 길을 조금 걸으면 곧 덕평봉으로 오르는 숲길이다. 나무에서 노니는 청설모를 구경하며 3시간쯤 걸으면 '잔돌들이 많은 고지의 평원'이란 뜻의 세석평전(1,600m). 여긴 뭐니뭐니 해도 봄날에 방문하는 것이 제격이다. 지리산이 겨울잠에서 완연히 깨어나는 5월 하순에서 6월 초 사이엔 이곳 세석평전엔 수만 그루의 철쭉나무에서 피어난 붉은 꽃들이 독특한 운치를 자아내며 트레커들을 유혹하기 때문이다.

세석의 철쭉꽃엔 애틋한 전설이 담겨 있다. 아득한 옛날 지리산 자락엔 한 쌍의 젊은 남녀가 살고 있었는데, 그들에겐 자식이 없었다. 고민에 빠진 여인은 결국 곰의 꾐에 빠져 산신령의 금기를 어기고 소원성취를 해주는 샘물인 음양수를 몰래 마셨다가 산신령에게 '너는 세석평원에서 평생 동안 철쭉꽃을 가꾸도록 하라'는 벌을 받았다. 뜻하지 않게 남편과 헤어진 여인은 슬픔을 머금은 채 열 손가락에서 피가 나도록 철쭉꽃을 가꾸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철쭉꽃이 여인의 애처로운 모습을 닮아 청초하고 아름다운 것이라 생각한다.

비련의 여인이 죽을 때까지 흘렸을 눈물 때문에 울적해진 마음은 촛대봉 오르막길에서 땀을 흘리면서 조금씩 누그러진다. 바람에 기묘하게 다듬어진 바위가 널려있는 촛대봉에서 세석평원 쪽을 뒤돌아본다. '슬픈 전설의 평원' 너머로 여인의 엉덩이를 닮은 반야봉이 에로틱하게 두 눈에 들어온다.

아름다운 야생화로 가득한 몇 개의 봉우리를 넘어 두 번째 밤이자, 마지막 밤을 보낼 장터목에 도착한다. 장터목은 '시장이 있던 곳'이란 뜻으로서, 오래 전에 천왕봉 남쪽 주민과 북쪽의 주민들이 매년 봄가을 모여서 서로의 생산품을 물물 교환했다. 이곳에 있는 장터목산장은 지리산 천왕봉 일출을 보기 위한 전진캠프 역할을 한다. 이곳에서 두 번째 밤을 보낸 뒤 새벽에 일출을 보기 위해 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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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터목대피소 제석봉 통천문 천왕봉
    법계사 칼바위(칼바위갈림길) 중산리탐방안내소
3일차 '삼대가 선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천왕봉 일출을 보기 위해서는 새벽 4시에는 일어나야 한다. 캄캄한 길을 랜턴으로 비춰가며 산을 오른다. 먼저 만나는 제석봉 정상은 황량한 고원이다. 무자비 한 도벌로 인하여 애석하게도 그토록 웅장했던 원시림은 사라지고 황량한 초원으로 변하여 옛 자취를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별빛 옷을 입은 고사목들은 마치 천왕봉으로 가는 길을 지키는 장수처럼 굳건히 길을 안내하고 있다.
몇 개의 가파른 봉우리를 넘으면 '하늘과 통한다'는 뜻을 지닌 통천문이 반긴다. 이는 노고단 쪽에서 천왕봉을 오르는 마지막 관문인 바위굴로서, '부정한 자는 이곳을 통과하지 못한다'는 전설이 있다.
또 제 아무리 신선이라 해도 지리산에서는 이 문을 통하지 않고는 하늘에 절대 오르지 못한다고 한다. 경건한 마음으로 통천문을 지나니 곧 천왕봉(1,915m)이다. 천왕봉은 바위 봉우리다. 세차게 부는 차가운 바람을 막아줄 나무 한 그루 없어 바위틈에 몸을 숨기고 해를 기다려야 한다. 운이 따른다면 문득 희뿌연 기운에 쌓여있던 동녘 하늘이 오렌지 빛으로 물들더니 한순간 붉은 햇덩이가 불쑥 솟아오르는 걸 볼 수 있다. 그리고 사방으로 쏟아지는 햇살. 지리산은 그 햇살을 받고 기지개를 켜며 커다란 몸뚱이를 일으키는 장관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천왕봉에서는 중산리 계곡으로 내려오는 게 가장 빠른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