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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정말 정성들여 만드는 것이 최고지, 신맛, 단맛, 떫은 맛 빼놓으면 막걸리 맛이 안나요.
다 어디든 막걸리 하나 잘 만든다고 하지만 옛날 방식대로 하는 인월양조장 만한 것이 없어."
그야말로 세월이 딱 멈춘 듯하다. 'KBS 한국의미 방영, 막걸리의 명인, 송준수'란 노란 간판 아래의 인월양조장으로 들어가면 고향의 정을 느끼게 하는 양조장이 40여년 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양조장은 여러 작업장으로 나눠져 있다. 숙직실, 제성실, 검사실, 제1원료창고 등. 지금은 먼지가 앉아 글자를 알아보기도 힘들 정도로 퇴색된 문 입구의 안내판이 세월을 짐작케 한다. 1963년 3월 21일이란 글자가 새겨진 술독도 그대로 남아 있다. 그 중 술을 걸러내는 곳인 제성실을 들여다봤다.
"막걸리 한 잔 해 보실래유?" 인월양조장 송준수 명인이 따뜻한 인사를 건네준다. 송준수 명인은 인월면 인근의 아영양조장에서 13년을 일하다 1978년 4월 25일부터 인월양조장을 맡아 오고 있다. 거의 50년에 가까운 세월을 막걸리 만드는 일에 몰두했다. "술이 쉬워 보여도 까다로워요. 상당히 까다로워요. 아무 때나 되는 것이 아니에요. 내 목에 들어가는 것니까 까다롭게 해야되요. 잘 해야 되는거죠."

막걸리 만드는 방법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구드밥을 찌고 섞고 식히고. 입국실에서 누룩도 직접 생산하고. 밑술을 만들어 숙성시켜 막걸리를 만드는데 옛 방식 그대로다. 모든 것이 수작업으로 처리된다. 그야말로 송준수 명인의 손맛이다.

"이 오동나무 누룩 틀 봐요. 이전부터 사용하던 건데, 지금도 그대로 써요. 요즘 양조장은 다른 곳에서 쪄오기도 한다던데 그러면 술이 맛없는 기라." 술이 완성되면 저온창고에서 시원하게 해서 술을 낸다. 막 나온 막걸리 맛은 개운하고 깔끔하다. 그리고 시원하다. 맥주 맛에 길들어진 입맛이 싹 씻겨 내려가는 것 같다. 얼마나 생산하는지 물었다.

"이젠 생산량이 많지 않아요. 주문이 들어오면 술을 내지. 촌에 술 나가는 것이 있겠습니까. 여름에는 좀 나은데 겨울에는 잘 안 나가지."
지금은 인근 면에 새로운 양조장이 생겨서 옛날처럼 술 생산량이 많지 않다고 손사래를 친다.
막걸리 판매가 많았을 때는 종업원 둘이서 만들고 배달도 둘이서 해야 했다고 전한다.

인월양조장의 역사가 궁금했다.
"난 원래 아영주조장에서 13년간 일을 했다. 거창으로 갔다가 78년에 인월로 왔지. 4월25일인가 이곳으로 왔어. 아영양조장에서 잔뼈가 굵었지. 나처럼 나이 먹고 오래 한 사람이 없지 뭐."
"다 나갔어, 왜냐하면 양조장 생활을 할려는 사람이 없어."

그가 유명해진 것은 KBS의 '한국의 미-술 익는 마을'편에 출연하면서 부터다. '그게 그때는 8, 9년 되었나 보내요. 그때부터 술을 찾는 사람도 많고 촬영하겠다는 사람도 많아졌어요.".

지리산 둘레길이 유명해지면서 인월양조장을 찾는 관광객도 늘었다. 산에 가는 길에 막걸리 한두 병 사다가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한 말씩 사가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우리 고유의 민속 막걸리는 그 자체가 한마디로 자연과 자연으로 만들어 마시는 것이다. 뻘건 물들여 와인으로 만드는데 그게 아니야. 우리술은 바로 막걸리지. 텁텁한 맛. 신토불이 그 맛이야. 별것을 다 넣은 건 그건 술이 아니지."

막걸리에 대한 그의 애정은 변함이 없나보다. 양조장 한 켠에 그의 배달 자전거가 세워져 있다. 그의 인생과 함께 해온 애마다.

"주문이 오면 내가 이 자전거로 배달을 가지. 인월에 있는 식당, 마트 등에 직접 갔다 주지. 매일 매일 하는 거지. 이것도 벌써 30여년이 넘었지."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주문이 들어왔다면서 배달을 서둘렀다. 제법 묵직한 막걸리 통을 자전거에 실고 힘차게 페달을 밟는다.